2010년 09월 17일
C.S.T.S 4話 - 백의의 용병, 레밀리아(2)
"그러니까 이번 의뢰는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 오우거를 치는 거란 말이지?"
레밀리아는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남자에게 말하면서 옆에 있는 메건을 째려봤다.
"왜, 왜? 몬스터 토벌은 맞잖아."
"아무 말 안했어."
싸늘한 시선을 받고 한 발짝 물러서는 메건이 반박하자, 레밀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보수는 섭섭지 않게 쳐드리죠. 물론 살아남으셔야 가져갈 수 있습니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을 마친 검은 로브는 더 이상의 볼일은 끝난 건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
레밀리아는 그런 그를 불러 세웠다.
"보수는 주려는 금액에서 반이면 돼. 대신 내가 원하는 정보를 구해줬으면 하는데."
"무슨 정보를 원하십니까?"
가게를 나가려던 검은 로브는 다시 앉았던 자리로 돌아와 레밀리아에게 말했다. 레밀리아는 백의에 달린 가슴부근의 주머니에서 여러 장의 증명사진을 꺼내 탁자위에 던져놓았다.
"얘들을 찾아줘. 물론, 어디를 지나갔다는 소식만 있어도 좋아."
검은 로브는 17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와 소년이 찍힌 사진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의뢰를 받으신 겁니까?"
"아니, 내 학생들. 그리고 일이 끝나면 그건 다 돌려줘야 해."
"이런 특이한 차림의 사람이라면 금방 찾을 겁니다. 그럼 일이 끝난 다음에 보도록 하지요."
6장의 사진을 챙긴 검은 로브는 다시 의자에서 일어나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보수를 반으로 줄이고 정보를 얻겠다니 그러다간 굴러들어오는 복도 차버린다고."
메건은 터무니없는 발언을 한 레밀리아에게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돈은 딱히 필요 없어. 난 학생들을 찾아서 소속된 곳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니까."
"흐음, 1년이 지나서 노처녀가 되면 돈이 필요 없을지 누가 알아?"
-퍽!
또 다시 정강이를 걷어차인 메건은 다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테이렌 대륙의 모든 나라에선 16세가 지나면 성인으로 취급했다. 17세에서 23세사이를 결혼 적령기로 생각하고 그 나이가 지나면 노총각, 노처녀라고 불리고 있었다. 레밀리아의 나이는 23세. 1년이 지나면 이곳에서 노처녀 취급을 받게 된다. 메건은 처음 레밀리아의 나이를 들었을 때 노처녀라고 한마디 했다가 맞은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해 버린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선 아직 풋풋한 나이거든?"
레밀리아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은 채로 바닥에 뒹굴던 메건의 머리를 신고 있던 하이힐로 밟으며 싸늘하게 내려다 봤다.
"아악! 잘못했어! 잘못했으니까 발 들어줘!"
머리를 짓밟힌 메건은 정강이의 통증도 잊은 채 바닥에 엎드려 허우적거리면서 애원했다. 지금 상황이 메건에겐 악몽 같은 시간이었지만, 이 소동에 주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자들의 시선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나도 저런 미녀한테 밟혀봤으면.'
실제로 레밀리아에게 밟힌다면 그 생각은 쏙 들어가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레밀리아가 발을 떼자 메건은 힘이 빠졌는지 바다에 축 늘어졌다.
"오늘은 이정로만 용서해줄게."
"이, 이게 용서한 거냐?"
"응?"
"아, 아님다!"
제대로 못들은 레밀리아는 반문을 표했지만, 메건은 '반항하면 죽는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어이없어 하던 레밀리아는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숙소로 돌아갈게."
그리고 뻣뻣하게 굳어있는 메건에게 손을 흔들어보이곤 가게를 빠져나갔다.
* * *
방으로 돌아온 레밀리아는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들 괜찮겠지……."
창문 쪽을 고개를 돌려 작은 목소리로 나머지들을 걱정했다. 한 달여 동안 보수를 돈 대신 정보로 대체해왔지만, 아무것도 소득이 없었다. 그럴수록 불안한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혹시나 다른 세계로 가버린 건 아닐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문득 떠오른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리고 몸을 일으켰다.
-쾅!쾅!쾅!
"레밀리아! 큰일이야!"
그때 방문을 두르리는 소리와 함께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제, 제임스?"
문 너머에는 온몸에 상처를 입은 제임스가 복도 벽에 기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지, 지금 다른 용병단에서 쳐 들와서는 널 죽이겠다고 난리치고 있어."
이 말을 들은 레밀리아의 머릿속으로 한 사람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 녀석들 어디 있어?"
"본관에……. 수적으로 불리해. 안가는 게 좋을 거야."
걱정 어린 제임스의 말을 무시하고 레밀리아는 밖으로 나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이!"
끝까지 말리려는 제임스가 소리쳤다. 레밀리아는 자리에 멈춰서서 제임스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난 내가 벌인 일을 남이 마무리 짓도록 보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러고는 살짝 윙크를 해보이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 *
"이봐! 이 녀석들 실력이 아주 형편없는데?"
어깨에 대검을 들쳐 멘 남자하나가 입구에 서서 근처에 있던 무표정한 붉은 단발머리 여자에게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이런 떨거지들로 어떻게 용병단을 만들었는지 의심스러워."
그 여자는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던 남자의 머리를 걷어차면서 대답했다.
"이런 녀석들 속에서 강하다고 불리는 레밀리아라는 여자의 실력이 정말 궁금해지는군."
"나도 너희들의 실력이 궁금한데?"
남자의 말에 대답한건 남자를 걷어차던 여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뒤쪽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면서 들어온 백의를 입은 여자, 레밀리아의 목소리였다.
"흐음, 네가 레밀리아?"
레밀리아는 남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여자가 덤프를 단번에 제압했다고? 거짓말!"
여자 쪽은 겉으로 보기엔 툭하면 쓰러질 것 같은 레밀리아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보기와 다른 건 너도 마찬가지야."
남자 쪽은 실실거리면서 말했다.
"그보다 나한테 볼일 있다면서 왜 이 사람들을 건드렸는지 알고 싶은데?"
레밀리아는 두 사람이 하는 대화에 신경도 쓰지 않고 바닥에 쓰러진 단원들을 보며 말했다.
"일종의 준비운동?"
"탁치니까 다들 억하면서 쓰러지던 걸?"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여자를 레밀리아와 남자는 한심한듯이 쳐다봤다.
"……그거 웃으라고 하는 말이냐?"
"구시대적 발상이군."
"으흠! 어쨌든 덤프 녀석을 건드렸으니 보상은 받아야겠지?"
창피한 듯 헛기침으로 얼렁뚱땅 넘어간 여자는 차고 있던 레이피어를 꺼내들었다.
"죽을지도 모르니까 내 이름이 미샤라는 것 정돈 알려줄게."
"죽인다고?"
"응, 건드리면 죽인다가 우리 규칙이거든."
미샤의 말에 레밀리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레이튼, 넌 나서지마! 여자들의 싸움에 남자가 나서면 재미없어."
레이튼은 마음대로 하라는 제스쳐를 보이며 검을 바닥에 꽂았다.
"핫!"
그 순간 미샤의 레이피어 레밀리아를 향해 빠르게 찔러 들어갔다. 그런데도 레밀리아는 자신을 노리는 레이피어의 끝을 천천히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챙!
"뭐, 뭐야?!"
거칠 것 없이 앞으로 나아가던 레이피어는 레밀리아의 바로 앞에서 안 보이는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칫! 마법을 쓴 건가."
재빨리 뒤로 물러선 미샤는 재차 돌격했지만 이번에도 허망하게 막혔다.
"뒤에 숨어만 있지 말고 싸우는 게 어때?"
"지금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레밀리아는 가볍게 말을 받아치며 팔짱을 꼈다.
-쿠구구구궁! 콰앙!
그러자 바닥은 지진이 일어난 듯 진동을 하더니 건물 바닥을 뚫고 굵다란 나무 뿌리들이 솟아올랐다. 이상함을 느낀 미샤가 그 자리에서 피하는 덕에 맞진 않았지만 놀란건 마찬가지였다.
"이건 또 무슨……."
계속 말을 이어나가고 싶은 미샤였지만 그 나무뿌리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자신을 향해 찌르는 것을 피하려 자리에서 벗어났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 짓도."
레밀리아는 말 그대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신력을 앞에 퍼트려 레이피어를 막았을 뿐이었다. 단지 그것을 치면 나무뿌리들이 레밀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솟아오른다는 부가적인 효과가 발동된 거 외엔 없었다.
"그냥 얘들이 알아서 날 보호하는 것뿐."
"거짓말 마!"
레밀리아가 가진 신력의 특징을 모르는 미샤는 뿌리들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접근했다.
"이상한 수작부리지 말고 덤프에게 한 것처럼 덤벼!"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미샤의 말에 레밀리아는 두 개의 단도를 꺼내들었다.
"그럼 원하는 대로."
단도를 들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자 나무뿌리들은 공격이 탁 멈추더니 모두 땅 속으로 빨려가듯이 들어갔다. 그리고 레밀리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미샤는 다가오는 레밀리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휩싸였다.
'떠, 떨고 있는 건가? 내가?'
떨리는 손을 애써 참아내며 검을 들어 레밀리아를 노려봤다.
“헤에,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어디 갔을까?”
휘익!
쨍그랑!
단검을 들고 있던 레밀리아의 손이 옆으로 긋자 미샤의 검이 단번에 두 동강이 나면서 바닥에 검신이 떨어졌다.
“마, 말도 안 돼! 미스릴로 만들어진 검이!”
미샤가 놀라는 와중에도 레밀리아의 공격이 들어왔다. 다시 한 번 더 옆으로 그어버리면서 미샤의 옷길을 베어버렸다. 미샤는 베인 곳을 양팔로 가리고 뒤로 물러섰다.
“역시 내가 가야하는군.”
뒤에 가만히 서서 구경하던 레이튼이 미샤가 꼼짝도 못하고 당하는 모습에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바닥에 꽂아둔 검을 뽑아 어깨에 걸쳤다.
“이봐! 그만하고 나랑 싸우지 그래?”
레밀리아는 뒤에서 들려온 레이튼의 목소리를 듣고 험악하게 구겨진 표정으로 돌아봤다.
“윽!”
그녀의 표정을 봤을뿐인데 레이튼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며 신음을 흘렸다.
갓 피어, 레밀리아가 관리센터 최강의 관리자라는 명성에 맞에 자신의 신력만으로 상대방에 대해 공포심을 심어놓는 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말에 섞어 방출한 것도 아닌 단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레이튼은 위축되었다.
‘젠장, 저 여자 무척 강하다. 자칫하면 당하겠어.’
레이튼은 분하지만 표정만으로 자신을 눌렀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미샤, 그만해. 그냥 돌아가자.”
미샤는 레밀리아에게 진 것이 억울했지만 실력면에서 자신보다 위인 것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반드시 널 죽일테다!”
미샤는 저주에 가까운 말을 레밀리아에게 퍼붓고 레이튼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싱거운 녀석들…….”
상황을 정리한 레밀리아는 단검을 다시 백의 속에 집어넣고 주위를 살폈다.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겠군. 메건,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어, 그래.”
그렇게 말을 하고 자리를 떠난 곳에서는 길드원들이 어지러워진 로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대단한 피어 인듯
# by | 2010/09/17 12:24 | CSTS | 트랙백 | 덧글(1)




